『어리석은 선택을 멈춰라』 MBTI 과몰입: 당신은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나요?
목차
프롤로그: '넌 무슨 유형이야?' - 흔한 질문 뒤 숨겨진 심리

"너 MBTI 뭐야?"
"혹시 혈액형이 O형이니?"
회사 점심시간, 혹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질문들을 주고받는 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MBTI 유형이나 혈액형을 이야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완전 딱 맞네!" 하고는 합니다. 재미로 주고받는 가벼운 대화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유형'이라는 꼬리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곤 하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겉으로만 그럴 뿐, 진짜는 다르지 않을까? 대체 왜 우리는 그 좁은 기준에 맞춰 타인을 재단하고, 때로는 나 자신까지 그 틀 안에 투영해서 보려 하는 걸까요? 오늘,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멈춰라』라는 심리 서적을 통해, 이러한 우리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에피소드: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뿌듯함 뒤의 허상 (feat. 나의 자괴감과 유튜브)
제가 다니는 회사도 'MBTI 과몰입'이 꽤 심한 편입니다. 새로운 팀원이 오면 자연스럽게 MBTI 유형부터 공유하고, 그 유형에 맞춰 '아,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단정 짓는 분위기였죠. 팀장님은 항상 "OOO 대리님은 INTP라 그런지, 역시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야!"라고 말하며 흐뭇해했고, 다른 직원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며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과연 그럴까? 진짜 INTP라서 그런 걸까?'
그러다 어느 날, 저도 모르게 뼈아픈 한마디를 듣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너는 역시 OOOO형(제 MBTI 유형) 같아. 그런 건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 겁니다. 칭찬이 아니었죠.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아, 나는 진짜 그런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내가 그 유형이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죠.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퇴근해 집에 돌아왔는데, 웬걸? 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발 닦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이거 보다가 나중에 내 유형 검색해서 내가 왜 그랬는지 찾아봐야지!' 생각만 했죠. 그리고는 결국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ASMR 듣다가 스르륵 잠들어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제의 자괴감은 간밤의 꿈처럼 희미했고, 검색해야지 했던 다짐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 이놈의 허당끼와 게으름...
에피소드2: '그 사람은 MBTI가 뭔데?' - 하동균 썰에 대입해보니
이런 심리는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지난번 제가 코인노래방에서 우연히 전 애인의 '삑사리 고음'과 옆방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던 글 기억하시나요? 만약 그때 그 자리에 MBTI 과몰입러가 있었다면, 아마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야, 걔는 ESFJ잖아. 옆에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잘해주고 싶어 하는 인싸 본능이지. 삑사리 나는 것도 엔터테이너 기질 때문일 거야!" 혹은 "걔는 ISFP라 그런 거 아니야? 평화주의자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자랑 노래 부르는 거지. 너한테 관심 없으니 삑사리 나도 상관 안 한 걸 거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 삑사리 고음은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닌, 벅차오르는 감정이거나 혹은 진짜 그냥 음치여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편적인 정보와 이미 자신이 가진 틀(MBTI 유형)에 맞춰 상대를 해석하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뿌듯해합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심리 탐구: 『어리석은 선택을 멈춰라』와 인간의 마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처럼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자신과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때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뿌듯해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걸까요?
사회 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와 엘리엇 애런슨이 쓴 『어리석은 선택을 멈춰라』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경향을 깊이 파헤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틀렸다는 증거가 제시되어도 그것을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오히려 자신의 기존 믿음을 합리화하려 하는지 '인지 부조화'와 '자기 합리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예: '저 사람은 ISFJ일 거야')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거나 다르게 해석해버립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뿌듯함은, 사실 자신의 초기 가설이 옳았음을 '확증'하려는 편향된 시선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인지적 구두쇠 (Cognitive Miser):
인간의 뇌는 정보를 처리할 때 가능한 한 노력을 적게 들이려 합니다. 복잡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많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하죠. MBTI나 혈액형 같은 단순한 분류는 '빠르고 쉽게' 사람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지름길을 제공하며, 우리의 '인지적 구두쇠' 성향을 만족시킵니다.
사회적 범주화 (Social Categorization) 및 고정관념 (Stereotype):
사람들을 특정 범주(집단)로 나누고 그 범주에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세상을 단순화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 인지 과정입니다. MBTI 유형은 이러한 '사회적 범주'를 만들고, 'OOO 유형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형성하여 개인의 복잡한 면모를 간과하게 만듭니다.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저 사람은 OOOO형이니까 이럴 거야'라는 기대나 예측이, 실제로 그 사람의 행동이나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 예측이 실현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특정 유형의 틀로 대하면, 그 사람도 거기에 맞춰 반응할 수 있는 것이죠.
제가 "너 그런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자괴감에 빠졌던 순간도, 결국 누군가의 단편적인 판단이 저의 '자기-개념'에 침투하여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하는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며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고 잠들어버린 것은, 복잡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인지적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인지적 구두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죠.
마치며: 틀을 깨고 진짜 '나'를 만나는 용기
MBTI나 혈액형은 분명 흥미롭고 유용한 자기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틀이 되거나, 타인을 단편적으로 재단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하나의 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존재니까요.
이제는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이는 인지적 오류들을 인지하고, 다른 사람의 진짜 모습을 편견 없이 보려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나'를 마주할 때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MBTI나 혈액형이라는 틀에 갇혀 본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진짜 '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주세요!
글 속 심리 용어 해설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가설을 확인하려는 경향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인지적 구두쇠 (Cognitive Miser): 인간은 정보를 처리할 때 가능한 한 인지적 노력을 절약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하여 이해하려는 효율성 추구에서 나타납니다.
사회적 범주화 (Social Categorization): 사람들을 특정 범주(집단)로 나누는 인지적 과정입니다. 이는 세상을 단순화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지만, '고정관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 (Stereotype): 특정 사회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특정 특성이나 행동 양식을 일괄적으로 부여하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믿음입니다.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어떤 예측이나 기대가 실제로 그 예측이나 기대를 뒷받침하는 행동을 유발하여 결국 그 예측이 실현되도록 만드는 현상입니다.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자신의 생각, 신념, 태도와 실제 행동이나 새로운 정보가 서로 다를 때 느끼는 불편하고 불쾌한 심리적 상태입니다.
자기 합리화 (Self-Justification): 자신의 행동, 생각, 감정 등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무의식적인 과정입니다. 특히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는 데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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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 - '우주를 줄게': MBTI 체크를 하며 내면을 탐색할 때, 그리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자신의 '우주'를 넓혀갈 때 들으면 좋을 노래입니다.
[M/V] 우주를 줄게 - 볼빨간사춘기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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