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시간] 인간의 불안 반응과 자연 환경: 나, 산과 하나 되다
프롤로그: 도시인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결심
지루한 일상 속, 끝없이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 이러다간 정말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파마라도 할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안 돼!' 나는 결심했다. 건전하게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산을 오르기로. 나름 진지한 결심이었다. 단순히 등산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며 도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지친 내 마음에 진정한 안정을 찾아야겠다는 나름 거창하지만 절박한 목표였다. 등산복은 갖췄지만, 막상 신발은 새로 산 운동화. 물통에는 편의점 커피. 어딘가 어설픈 모습과 함께 나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1부: 낭만적인 산행의 시작, 그리고 뜻밖의 '굴림'
한 발 한 발 산길을 오를 때마다, 도시의 소음과 복잡한 생각들이 저 멀리 희미해지는 듯했다. 나는 지금 산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말 그대로 '닦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지.) 마음의 안정을 찾아 헤매는 나의 여정은 꽤나 순조로웠다.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속삭이듯 울려 퍼지는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는 마치 세상의 잡음이 사라지고, 오직 저와 산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그 고요함을 더욱 깊게 만들었죠.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오롯이 감상했다.
바로 그때였다. 감상에 젖어있던 제 발이, 그만 툭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다. '으악!' 하는 소리도 채 나오기 전에, 몸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얼굴을 박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 손으로 겨우 지탱했다. 하지만 나뭇잎과 흙이 얼굴에 달라붙고, 코에서는 흙먼지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아... 산은 나에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주는 줄 알았는데, 넘어짐도 주는구나!' 하는 헛생각이 스쳤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엉덩이가 욱신거렸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봤으면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했을 겁니다.) 흙투성이 된 손을 털며, 나는 다시 평정을 가장했다. '괜찮아, 이 또한 산의 일부니까!'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마음의 안정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폐포 깊숙이 들어오는 유칼립투스의 향긋한 꽃내음은 머리끝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가끔 마주치는 어르신들과의 '고생하십니다', '힘내세요' 하는 정겨운 인사는 삭막했던 제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아,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평화! 내 마음이 드디어 고요해지는 건가! 이대로라면 진정한 '도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군요.
2부: 낭만의 파괴자, 그리고 '자연인'의 길목에서
한참을 오르다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바위틈에서 삐죽 고개를 내민 풀 한 포기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윙~'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작은 검은 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에, 볼에, 심지어 입술에도 달라붙는 그 끈적하고 간지러운 감촉! '젠장, 벌레!'
손으로 휘휘 저어도 소용없었습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놈들까지... 순간, 이성을 잃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이고 '도'고 다 필요 없었습니다. 오직 이 벌레 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주위를 둘러보니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머리부터 뒤집어썼습니다. 벌레들은 더 이상 얼굴에 달라붙지 않았지만... 문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 벌레 지옥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발길 닿는 대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발이 엉키고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를 수십 차례. 그야말로 맹인이 숲을 헤매는 격이었습니다.
3부: 길 잃음, 그리고 불안감의 심연
한참을 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풍경이 계속 똑같았습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봐도 아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길을 잃은 건가?
그 순간, 땀으로 흥건했던 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발아래까지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목구멍을 조여왔습니다. 나는 분명 마음의 안정을 찾으러 왔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통제 불능이었습니다. 언제쯤 이 산을 벗어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공포를 키웠습니다. 핸드폰 배터리는 간당간당했고, 해는 서서히 기울고 있었습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영영 못 나가는 건가? 나는 이제 자연인이 되는 건가?' 하루아침에 도시를 등지고 산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 먹을 건 어떻게 구하고, 밤에는 어디서 자야 하나? 옷도 벌써 너덜너덜한데... 이 모든 상상이 저를 존재적인 불안감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아니, 자연인은 무슨! 그냥 119 불러야 하나?' 하는 고민과 '혹시 누가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하는 자존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사회에서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4부: 고난 속의 '뜻밖의 운동'과 '개똥철학'의 발현
119를 불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출구는 있겠지! 그렇게 4시간, 아니 어쩌면 5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이때쯤이면 스트레스 해소는커녕, 온몸이 너덜너덜해졌을 겁니다.)
정말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어질 무렵, 저 멀리 익숙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라? 저것은 바로 저희 집 근처로 연결되는 **'그 샛길'**이 아니던가! 벌레 덕분에(?) 뜻밖의 강제 운동을 하고 지름길까지 발견한 겁니다.
집에 도착해서 거친 숨을 고르며 겨우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다리에는 상처가 났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뿌듯하고 개운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산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더니, 이런 개똥철학을 주려고 그랬던 거였나?"
산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평화로운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사소한 벌레(처럼 보이는 문제)가 우리를 극도의 불안감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의 안정은 안드로메다로 갈 뻔!) 아무리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해도, 현실은 언제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것을. (벌레 피하려다 자연인 될 뻔!) 그리고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운동량'**과 **'새로운 샛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온몸은 쑤시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묘한 보람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런 황당한 경험 속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인간의 불안 반응'**이라던가, '불확실성 속에서 피어나는 인지적 왜곡' 같은 것들이 있었던 건 아닐까? 뭐, 제가 갑자기 심리학 박사라도 된 것처럼 거창하게 이야기하려니 좀 웃기네요. 하하.
에필로그: '인간미'와 '성장'의 메시지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오늘도 참 뿌듯하고 보람찬 하루였다!' 속으로 외쳤습니다. (물론 벌레 피하다 길 잃은 건 비밀로 하고 말이죠.)
당신의 삶에도 벌레처럼 사소하지만 당신을 '길 잃게' 만든 존재가 있었나요? 그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개똥철학'을 남겼나요? 저는 여전히 산이 마음의 안정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제 산에서 벌레를 보면... 일단은 눈을 감고 도망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샛길의 존재는 감사하지만, 다시는 길을 잃고 발견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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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벌레를 피하려다 길을 잃고 자연인이 될 뻔한 황당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예측 불가능함과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는 산에서 만난 벌레처럼 사소하지만, 우리를 길 잃게 만드는 존재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비단 산에서만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저는 집에서 아주 평범한 갈비찜 한 조각 때문에, 제 인생에서 가장 유치한(?) 질투심과 서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에피소드 속에서도 저는 저만의 '개똥철학'을 발견했죠.
- [나는 왜 형제가 불편할까?]를 통해 바라본 갈비찜 한 조각의 설움?
- (링크: 해당 갈비찜 에세이 글로 연결)
제 어설픈 산행기처럼, 어쩌면 당신의 삶에도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뜻밖의 깨달음'을 주었던 '갈비찜 같은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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