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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의 복싱 성장기: '투지'를 만나다 (1편)

'몸치'의 링 위 첫 발자국: 땀과 '투지'의 씨앗을 심다

어떤 이는 복싱을 '싸움'이라 하고, 어떤 이는 '스포츠'라 부릅니다. 하지만 제게 복싱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투지'**의 씨앗을 발견하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저의 복싱 여정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죠. 오히려 '몸치'의 좌절과 땀방울로 가득한, 어딘가 민망한 첫 발자국이었습니다.


프롤로그: '피닉스 박관장님', 나의 링 위 첫 발자국을 이끌다

복싱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건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유튜브에서 고(故) 피닉스 박현성 관장님의 영상을 보게 된 것이죠. 전신 화상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극복하고, **"강해져라. 강해져야만이 네 자식도 지킬 수 있고 너 스스로도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투지 넘치는 눈빛과 목소리는 제 마음속 깊은 곳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특히, 링 위에서 그가 한 학생에게 핸드랩(붕대)을 감아주던 장면은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우리 손은 많은 작은 관절과 뼈로 이루어져 있어, 복싱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인 주먹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쉽게 골절될 수 있죠. 핸드랩은 바로 이러한 손목, 손가락, 너클 등 손 전체에 단단한 지지 역할을 해주는 보호대입니다. 관장님은 핸드랩을 꼼꼼히 감아주며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순간, 단순히 공격하는 기술이 아닌,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담은 그 말들이 너무나도 멋있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서철 선수와 같이 훗날 그의 제자들이 링 위에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욱 강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처럼 삶의 밑바닥에서도 끊임없이 일어서던 이들의 처절한 투혼을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보며 강렬한 울림을 받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죠. 그의 이야기는 저에게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어려움에 맞설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몸치'의 링 위 좌절: 어색함, 답답함, 그리고 땀 냄새

그렇게 용기를 내어 체육관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샌드백에 주먹이 박히는 '텅! 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땀과 쉰내가 뒤섞인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한쪽에서는 문신을 한 형님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훈련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담배 냄새 배인 아저씨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쉐도우 복싱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죠. '내가 과연 이런 곳을 다닐 수 있을까?'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미 등록을 마친 수강료가 아까워 **'오기'**로 버티기로 했습니다.

 

복싱 링과 샌드백이 있는 체육관 풍경
복싱 링과 샌드백이 보이는 체육관 내부

 

첫 훈련은 저에게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복싱' 하면 떠오르는 멋진 잽과 스트레이트는 꿈같은 이야기였죠. 저는 선천적인 **'몸치'**였습니다. 코치님은 줄넘기부터 시작해 스트레칭, 원투 잽, 스트레이트 자세를 가르쳐주셨지만, 발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주먹에 체중을 실기 위해 허리를 틀고 어깨를 돌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어도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고, 주먹은 허공을 가르는 헛스윙에 불과했습니다. 이후에야 배우게 된 스텝과 위빙 같은 동작은 더욱더 어려웠습니다.


쉐도우 복싱의 민망함, 그리고 '왜?'라는 질문

쉐도우 복싱을 할 때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거울 속 제 모습은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싸우는 것도 아닌, 그저 '고장 난 인형' 같았죠. 옆에서 샌드백을 '팡팡' 때려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왠지 모를 열등감과 함께 '아, 저분들은 전생에 쌈 좀 해보셨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초보 복서의 쉐도우 복싱: 거울에 비친 어색한 자세
거울 앞에서 쉐도우 복싱하는 남자

 

계속되는 헛스윙에 코치님의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회전이 안 돼요! 허리가 움직여야죠!" 처음에는 그저 '아, 어렵네' 하고 넘겼지만, **'왜 나는 힘이 실리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저의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자극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모르고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통제하는 능력이죠. 펀치 하나에도 허리의 미세한 비틀림, 어깨의 회전, 체중 이동이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원리가 숨어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눈앞의 현상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고 탐구하는 습관'**이 저에게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심리적 통찰: 좌절 속에서 싹튼 '투지'의 씨앗

복싱 입문 초기의 저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기술(훅, 어퍼, 바디샷, 멋진 스텝과 위빙)에 대한 환상이 컸습니다. 관장님이나 코치님이 왜 계속 지루한 원투와 줄넘기, 자세 잡기만 시키는지 내심 불만이 있었습니다. '빨리 샌드백을 맘껏 치고 싶은데, 왜 이런 것만 시키지?' 하는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심리가 컸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던 것이죠.

하지만 헛스윙과 끝없는 지루한 반복 속에서, 저는 비록 아주 미세하게나마 **'회복 탄력성(Resilience)'**의 씨앗을 심고 있었습니다. '포기할까' 하는 마음과 '오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계속 도장을 찾았고, 작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탐구심을 발휘하며 인지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장님의 '핸드랩' 이야기를 떠올리며, 저는 공격보다 '나를 지키는 법'에 먼저 집중해야 함을 깨달았죠. 이 좌절과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바로 제 안에 '투지'라는 끈질긴 씨앗을 심었던 첫 발자국이었습니다.

 

붉은 투지: 샌드백을 치며 한계를 넘어서는 복서
붉은 조명 아래 샌드백을 치는 남자

 

다음 2편에서는 링 위에서의 첫 스파링을 통해 마주한 처절한 좌절과 무기력감, 그리고 그 속에서 '투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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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로운 도전의 설렘, 그리고 좌절 속에서도 '투지'의 씨앗을 심는 과정의 끈기와 강인함을 담고 있습니다.

  • 리쌍 - 독기
    • 이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독기를 표현하는 곡입니다. 복싱 입문 초기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버티며 투지의 씨앗을 심는 과정의 사용자님 마음을 대변하며 깊은 공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 리쌍(Leessang) 독기 (가사 첨부) - YouTube
  • 싸이 - 챔피언
    • 이유: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챔피언'처럼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챔피언'은 아니지만, '투지'의 씨앗을 심고 도전을 시작하는 이의 끓어오르는 내면의 열정과 긍정적인 다짐을 상징하며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 싸이 - 챔피언 (흠뻑쇼 2019)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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